개역한글 롬1:!~4
1절: 예수 그리스도의 종 바울은 사도로 부르심을 받아 하나님의 복음을 위하여 택정함을 입었으니 2절: 이 복음은 하나님이 선지자들로 말미암아 그의 아들에 관하여 성경에 미리 약속하신 것이라 3절: 이 아들로 말하면 육신으로는 다윗의 혈통에서 나셨고
4절: 성결의 영으로는 죽은 가운데서 부활하여 능력으로 하나님의 아들로 인정되셨으니 곧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시니라
하나님을 안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 한 나라의 대통령을 안다고 해도 그것은 대단한 일이다. 그러나 그 사람의 겉모습만 아는 것과 그 인격과 성품 깊은 곳까지 아는 것은 전혀 다른 차원의 일이다. 열 길 물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의 마음은 모른다는 말처럼, 사람의 마음을 아는 것은 그 무엇보다 어렵다. 그렇다면 하나님을 안다는 것, 예수를 안다는 것은 얼마나 더 깊고 경이로운 일이겠는가. 사도 바울은 로마서 첫 머리에서 그 놀라운 비밀의 문을 열어 보인다.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안에 감추어진 씨의 비밀, 그것을 아는 자만이 진정한 영생의 문에 들어설 수 있다.
소제목 1: 영생은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다
성경 전체는 무엇을 위해 기록되었는가. 요한복음 17장 3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영생이란 먼 훗날 천국에서 시작되는 것이 아니다. 지금 이 땅에서 예수를 아는 것, 그것이 곧 영생의 시작이다. 그러나 오늘날 예수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예수를 전혀 모르는 자들이 얼마나 많은가. 상대방을 아는 것만큼 믿을 수 있고, 아는 것만큼 의지할 수 있다.
한국 땅에 1,300만 명의 예수 믿는 이들이 있다 하지만 과연 그들이 예수를 얼마나 알고 믿는가. 믿기 전에 먼저 알아야 믿을 수 있는 것이다. 믿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다. 부자지간에도, 부부지간에도 못 믿을 때가 있는 것처럼, 아는 것과 모르는 것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다. 죽음에 처했을 때 살길을 아는 자와 모르는 자는 전혀 다른 결말을 맞이한다. 예수가 어떠한 분인지를 아는 것이 그토록 중요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하나님은 영으로 계시기에 우리 속에 있는 영으로만 통할 수 있다.
돈도 옷도 필요 없고, 오직 내가 가진 영으로 기도할 때 내 말속에 들어 있는 영이 하나님께 전달되는 것이다. 씨의 비밀과 예수 탄생을 깨달을 때, 오늘날 예수를 전혀 모르면서도 예수를 안다 믿는 어리석음에서 벗어나게 된다. 지혜자가 되고 나서야 무식한 것을 알게 되듯, 이 말씀 앞에 겸손히 무릎 꿇는 자만이 참 지식의 첫 걸음을 내딛는다.
소제목 2: 씨란 무엇인가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주신 약속의 핵심에는 씨가 있었다. 창세기 22장 17절에서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내가 네게 큰 복을 주고 네 씨로 크게 성하여 하늘의 별과 같고 바닷가의 모래와 같게 하리니 네 씨가 그 대적의 문을 얻으리라 또 네 씨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얻으리니 이는 네가 나의 말을 준행하였음이니라 하셨다 하니라. 하늘의 별처럼, 바다 모래처럼 많아질 씨.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육신적인 이스라엘 자손을 가리키는 말인가. 이스라엘의 총인구는 사백만이 채 되지 않으며, 경상북도보다 적은 수입이다.
육안으로 보이는 별의 수는 4억 5천이라 하고, 바다 모래 한 주먹만 쥐어도 엄청난 수인데, 이스라엘이 무슨 바다 모래 같고 하늘의 별 같이 많아진 것인가. 이스라엘은 아직까지도 아랍족의 침략 위협 속에 있다. 그렇다면 씨는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가. 갈라디아서 3장 16절은 이 비밀을 열어 보인다. 이 약속들은 아브라함과 그 자손에게 말씀하신 것인데 여럿을 가리켜 그 자손들이라 하지 아니하시고 오직 하나를 가리켜 네 자손이라 하셨으니 곧 그리스도라. 씨란 육신적인 씨를 가리켜 말한 것이 아니라 예수 한 사람을 가리켜 말씀하신 것이다.
이것을 아무도 모르고 있었다. 자손 옆에 작은 1자가 있고 헬라어로 씨라 표기되어 있으니, 이 씨는 여럿을 가리킨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 예수를 가리킨다 하였으니 예수는 아브라함의 씨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왜 예수가 아브라함의 씨인가. 씨인 예수가 대적의 문을 얻어야 하는데 도리어 십자가에 달리셨다. 대적의 문을 얻을 씨는 예수가 아니라는 것을 알아야 한다. 대적의 문을 얻을 씨는 예수로 말미암아 다시 탄생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소제목 3: 요한일서와 창세기가 증거하는 씨의 생명
씨의 비밀은 단순히 족보나 혈통의 문제가 아니다. 그것은 생명의 문제요, 하나님의 본성이 어떻게 사람 안에 거하게 되는가의 문제이다. 요한일서 3장 9절은 이렇게 선언한다. 하나님께로서 난 자마다 죄를 짓지 아니하나니 이는 하나님의 씨가 그의 속에 거함이요 저도 범죄치 못하는 것은 하나님께로서 났음이라. 하나님의 씨가 그 속에 거하는 자는 죄를 짓지 아니한다. 이와 같이 씨의 비밀을 안다는 것은 대단한 하나님의 축복인 것을 알 수 있다.
세상에서도 다른 것은 다 속여도 씨는 속이지 못한다고 한다. 자식은 부모의 속성을 받아서 그 부모를 닮게 된다. 열집 박 서방을 닮았다면 다른 씨를 받은 것이다. 예수의 씨가 우리 속에 있으면 죄를 짓지 아니하고 무죄한 자 되어 영원한 나라를 받게 된다는 말씀이 있다. 요한복음 5장 39절도 같은 방향을 가리킨다. 너희가 성경에서 영생을 얻는 줄 생각하고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이 성경이 곧 내게 대하여 증거하는 것이로다. 성경을 아는 것이 곧 예수를 바로 아는 것인 줄 믿는다.
예수의 탄생을 잘 모른다는 것은 예수에 대해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버지와 아들 사이를 보면 승겨진 비밀이 다 이해되고 알 수 있듯이, 예수의 탄생에 담긴 씨의 비밀을 알 때 하나님이 인류에게 준비하신 구원의 길이 비로소 선명하게 드러난다. 이것이 바로 요일 5장 5절의 말씀처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 하는 선언의 깊은 뿌리다. 씨의 비밀을 깨닫는 자만이 이 세상을 이기는 진정한 승리자로 설 수 있다.
결론
씨의 비밀은 성경 전체를 관통하는 하나님의 위대한 계획이다. 하나님은 아브라함에게 씨로 약속하셨고, 그 씨는 이스라엘 민족이 아니라 오직 예수 그리스도 한 분을 가리키셨다. 예수를 안다는 것은 이름을 아는 것이 아니라 그분 안에 담긴 씨의 생명을 아는 것이다. 요한일서가 증거하듯 하나님의 씨가 우리 속에 거할 때 우리는 죄에서 자유하고 세상을 이기는 자가 된다. 고통 중에 있는 영혼이여, 지금 이 말씀 앞에 서라. 씨의 비밀을 깨달을 때 당신의 삶에 진정한 영생의 빛이 임할 것이다. 후편에서는 예수의 탄생이 어떻게 이 씨의 약속을 완성하는지, 임마누엘의 비밀과 함께 더 깊이 나누도록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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