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제목: 후편[요17장] 군신의 법에 예속된 종들의 신앙과 종과 아들의 영적 차이, 아들의 神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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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은 순 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b제목: 후편[요17장] 군신의 법에 예속된 종들의 신앙과 종과 아들의 영적 차이, 아들의 神觀

by 영원한 샘물 2026. 5. 1.

개역 한글 17:3~8 전편 참조  

전편에서 우리는 구약의 하나님이 군신(軍神), 즉 만군의 여호와로 나타나셨음을 살펴보았습니다. 엄한 군법으로 다스리시며 조금만 범죄하여도 돌로 쳐 죽이고 염병으로 죽이시던 공포와 두려움의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 땅에 오심으로 비로소 참 하나님 아버지의 신관이 나타나게 되었습니다. 후편에서는 두려움의 종의 영과 사랑의 아들의 영을 비교하며, 우리가 어떻게 참 아버지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는지를 말씀을 통해 살펴보겠습니다. 신명기 7장 21절은 "너는 그들을 두려워 말라 너의 하나님 여호와 곧 크고 두려운 하나님이 너희 중에 계심이니라"고 했습니다. 

 

두려운 하나님! 만약 자기 아버지가 두려운 아버지라면, 아버지에게 어떻게 가까이 가겠습니까? 참 아버지의 따뜻한 사랑을 어떻게 느낄 수 있겠습니까? 참 아버지와 아들 관계가 형성될 수 있겠습니까? 요즘 부모와 자식 관계를 보십시오. 자식이 부모를 두려워하는 자식은 별로 없습니다. 오히려 부모가 자식들을 얼마나 사랑하는지 부모가 자식들을 보고 두려워 할 지경입니다. 그런데 만일 아버지를 두려워한다면 그 아버지는 참 아버지가 아니고 계부일지도 모릅니다. 이것이 바로 야훼의 신관이요, 질투의 신, 공포의 신인 것입니다.

소제목 1 군신의 법에 예속된 종들의 신앙

구약에 나타났던 하나님은 두려움과 공포의 하나님이므로, 모세도 하나님을 뵐 때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받을 때 하늘에서 우뢰 소리가 나고 번개가 번쩍이며 하늘에 시커먼 먹구름이 쫙 깔리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부르실 때에는 모세도 두려워서 덜덜덜 떨며 주여 하나님이 제발 나한테 나타나지 아니했으면 좋겠습니다 라고 기록되어 있습니다(출 19:16). 그 때에 있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히 시내산의 모세 곁에 나타나지를 못했습니다. 이와 같이 구약 시대에 있었던 하나님의 신은 바로 군신, 즉 두려운 신, 공포의 신이었습니다. 왜냐하면 구약 시대에 하나님의 백성들은 전부가 아버지를 알 수 있는 아들의 관계가 형성되지 못한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또한 하나님께 범죄한 종들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발은 발로 — 그것이 바로 구약 시대에 나타난 여호와의 신의 모습입니다. 이러한 군신(軍神)의 법을 받은 족속들이 누구인지 알 수 있습니다. 알라신을 믿는 자들이 바로 그런 자들입니다.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눈은 눈으로 — 즉 저 사람이 범죄해서 남의 눈을 뺐다고 하면 그 사람도 눈을 빼고, 저 사람이 손목을 다치게 했다면 이 사람도 손목을 다치게 하고, 이 놈이 도둑질을 했다면 손목을 끊고, 두 번 도둑질하면 왼쪽의 발목을 끊고 세 번하면 한쪽 발목을 끊고 내번하면 양발을 다 잘라버리는 등 무서운 신을 받은 족속들이 지금도 아랍 족속들입니다.

 

그것이 바로 구약 시대에 나타난 야훼의 신관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1장 23절은 "그러나 다른 해가 있으면 갚되 생명은 생명으로, 눈은 눈으로, 이는 이로, 손은 손으로, 발은 발로, 데운 것은 데움으로, 상하게 한 것은 상함으로, 때린 것은 때림으로갚을지니라"고 했습니다. 참으로 무서운 신입니다. 용서라는 것이 없습니다. 그리스도의 신관은 어떤 것입니까? 예수님께서 제자가 몇 번을 용서하면 되는가를 물었을 때 "일흔 번의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여 주어라"(마 18:22)고 하셨습니다. 바로 이것이 참 아버지의 신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는 질투의 신, 공포의 신, 복수의 신, 군신의 신입니다. 이런 군신의 신앙에서 탈출해야 합니다.

소제목 2  종과 아들의 영적 차이

로마서 8장 15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너희는 다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지 아니하였고 양자의 영을 받았으므로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느니라." 아들의 영을 받은 자들은 아들이요 종의 영을 받은 자들은 주의 종으로,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다. 오늘날 교회들은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받았습니다. 아바 아버지라 부를 수 있게 하는 것은 아버지와 아들의 관계를 형성시키는 아들의 영인 줄로 믿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에는 종의 영이 있고 아들의 영이 있습니다. 

 

여러분들은 종의 영을 받은 자들이 아니요 아들의 영을 받은 줄로 믿습니다. 갈라디아서 4장 5절은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왜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셨습니까? 이 율법은 야훼의 신의 신관이요 군신의 군법이기 때문입니다. 율법과 십계명은 군신의 군법이요 또한 신관 (神觀) 입니다. 그러므로 그 법을 벗어나야 합니다. 그리므로 그리스도께서는 율법 아래 있는 자들을 속량하시고 우리로 하나님의 아들의 명분을 얻게 하시고자 십자가로 계명의 율법을 무너뜨린 것입니다

 

(엡 2:14~15). "너희가 아들인고로 하나님이 그 아들의 영을 우리 마음 가운데 보내사 아바 아버지라 부르짖게 하셨느니라"고 하신 것입니다.종의 영을 받은 사람은 공포의 신, 두려운 신, 즉 야훼의 신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단코 구원받을 수가 없습니다. 조금만 범죄를 해도 그 죄 값이 지불되는 것이고 조금만 범죄를 해도 용서를 받지 못하는 것입니다. 구원받을 길이 전혀 없습니다. 그래서 아들의 영을 받아야 합니다.

소제목 3 아들의 신관 

요한복음 5장 17~18절에서 예수님이 안식일을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므로써 하나님과 동등하게 삼으셨습니다. 예수님이 안식일에 병을 고쳤으니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어떻게 안식일날 병을 고치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나 그네가 길을 가다가 웅덩이에 빠졌는데 그 빠진 것을 건져주고 가겠느냐 그냥 가겠느냐" 하고 물으시니까 "그야 건져주고 가겠지"라고 했습니다. "그럼 사람이 돼지 보다 낫지 않느냐 병들어서 다 죽어가는 사람을 고쳐 주었는데 돼지를 웅덩이에서 건져준 것 보다 낫지 않느냐"고 하면서 "아버지가 이 시간에도 일하시는데 내가 왜 쉬느냐"라고 하셨습니다.


이렇게 그 아버지의 신관을 주장하셨습니다. "유대인들이 이를 인하여 더욱 예수를 죽이고자 하니 이는 안식일만 범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을 자기의 친 아버지라 하여 자기를 하나님과 동등으로 삼으심이러라." 그래서 오늘날도 야훼의 신을 믿은 사람들이 참 아버지 하나님의 신을 믿는 자들을 이단시하고 죽이려고 하는 것입니다. 이는 신관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아들의 신관을 가지고 있는 여러분과 함께 하신다는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구원은 하나님과 부자지간의 관계가 형성되지 않은 신앙은 결단코 구원받을 수가 없고 아무것도 얻을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된 자들만이(엡 2:19) 아버지 집에 영원히 거할 수 있을 것이요(요 8:35), 종의 영을 받은 자들이 아들의 명분을 얻지 못한다면 영원한 구원을 받을 수가 없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들이 부식해서 망한다고 했습니다(호 4:6). 그러므로 아버지와 아들과의 신관을 가져야 합니다

결론

요한복음 17장 3~7절에서 예수님은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기도하시며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는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이 증거한 모든 말씀이 아버지의 신관에서 온 것을 깨닫기를 원합니다. 하나님을 아버지라고 부를 수 있는 자는 대단한 축복이 있습니다. 참 아버지 신관과 야훼의 신관은 다른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들은 기도할 때에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하지 말고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해야 할 것입니다. 

 

요한복음 17장 8절은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알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라고 했습니다.여러분! 하나님의 것은 다 아들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다 여러분들의 것이 되어야 합니다. 그것이 곧 참 아버지 하나님을 믿는 신관입니다. 지금 이 순간 무서워하는 종의 영을 벗어나서 아버지를 아버지라고 부르게 되었다는 것을 감사하게 여겨야 할 것입니다. 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우리는 야훼의 신관을 믿고 야훼의 율법과 야훼의 헌법을 가지고 있는 기성 교회와 비교할 때, 여러분들은 참 하나님의 구원의 말씀을 읽고 듣고 깨닫는 자에게 있다는 것을 크게 깨달아 귀한 자들이 되시기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