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한글 17:3~10
3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의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 4 아버지께서 내게 하라고 주신 일을 내가 이루어 아버지를 이 세상에서 영화롭게 하였사오니 5 아버지여 창세 전에 내가 아버지와 함께 가졌던 영화로써 지금도 아버지와 함께 나를 영화롭게 하옵소서 6 세상 중에서 내게 주신 사람들에게 내가 아버지의 이름을 나타내었나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었데 내게 주셨으며 저희는 아버지의 말씀을 지키었나이다
7 지금 저희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것이 다 아버지께로서 온 것인 줄 알았나이다 8 나는 아버지께서 내게 주신 말씀들을 저희에게 주었사오며 저희는 이것을 받고 내가 아버지께로부터 나온 줄을 참으로 아오며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줄도 믿었사옵나이다
9 내가 저희를 위하여 비옵나니 내가 비옵는 것은 세상을 위함이 아니요 내게 주신 자들을 위함이니이다 저희는 아버지의 것이로소이다 10 내 것은 다 아버지의 것이요 아버지의 것은 내 것이온대 내가 저희로 말미암아 영광을 받았나이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고 마지막으로 아버지께 기도를 드리셨습니다. 그 기도 가운데 가장 핵심이 되는 한 말씀이 있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니이다"(요 17:3). 이 짧은 한 구절 안에 구원과 영생의 모든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오늘날 수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믿는다고 말합니다. 교회에 나가고, 기도를 하고, 헌금을 드리며 신앙생활을 합니다. 그러나 과연 그들이 믿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 아버지이신지를 우리는 말씀을 통해 진지하게 물어보아야 합니다.
태어나기 전에 아버지가 돌아가셨다든가, 고아가 되어서 아버지를 보지 못한 사람을 제외하고는 자기 아버지에 관해서는 다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믿는다고 하면서 하나님 아버지가 누군지 모르고 "하나님을 믿는다"라고 하면, 마치 자기를 키워주고 있는 부모님이 혹시 친부모가 아닌가 하고 의심한다면 이는 불효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을 그냥 하나님이라고만 알고 참 하나님이 있는 줄 모른다면, 그것은 참 신앙이 아닙니다. 오늘은 참 하나님 아버지의 신은 어떤 신인가에 관해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소제목 1 — 스스로 난 자
이 땅 위에 하나님을 믿는 사들이 많지만, 과연 참 하나님을 믿는 자인가, 아니면 야훼의 신을 믿는 자인가를 분별하는 기준은 오직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람의 영이나 지혜로는 결코 분별할 수 없습니다. 마치 일본말을 잘 하는 사람은 일본에서 온 사람이고, 중국말을 잘 하는 사람은 중국에서 온 사람이듯이, 그 사람의 언어와 행동을 보면 어디서 왔는지 알 수 있는 것처럼, 어떤 말씀을 전하고 어떤 신의 성품을 드러내느냐를 보면 그가 참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인지 야훼의 신을 섬기는 사람인지를 분별할 수 있습니다.구약
시대에 나타난 하나님은 야훼의 하나님이었습니다. 즉 여호와 하나님이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신약 시대에 와서 비로소 아버지 하나님이라는 이름으로 칭호되었습니다. 구약 시대에는 아버지 하나님이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이름이 여호와인가, 아니면 야훼의 하나님인가?
사실 창조주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것은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세가 하나님께 부름을 받아 애굽에 가려고 했을 때, "네 신은 누구냐고 묻는다면, 너의 하나님이 누구냐고 묻는다면 제가 무엇이라고 말씀 드리오리까?" 라고 하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출 3:14).이름을 말하지 않고 '나는 스스로 난 자니라. 스스로 난 자가 보냈다 하라'고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스스로 난 자임을 강조하셨으며 자신을 **독생자(獨生者)**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알고자 하는 모세에게 "나는 네 하나님 아브라함의 하나님, 이삭의 하나님 야곱의 하나님이로다"라고 말씀을 했습니다. 원래 이름이라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이 만들어 놓은 피조 세계에서 사람과 사물을 구별하기 위해 존재하는 것입니다. 이름이 없다면 구분과 구별을 할 방법이 없을 것입니다.

소제목 2 — 만군의 여호와
세상에 사람도 태어났을 때에는 이름이 없습니다. 그저 우리 아가, 우리 아기라 하여 이름을 지었어도 우리 아기가 우리 곰동이니 우리 육동이나 그렇게 부릅니다. 그러다가 나이가 조금 들면서 이름이 굳어집니다. 그리다가 학교에 다니면 학생이라는 별칭이 더 붙습니다. "학생! 학생!" 하여 통합니다. 그 학생의 이름이 무엇이냐라고 이름이 따라 붙습니다. 그 다음 좀 더 자라게 되어 학교를 졸업하게 되면 학생이라 하지 않습니다. 그 총각 이름이 무엇이냐? 그러다 결혼을 하게 되면 여자의 이름은 없어지고 아무개 어머니, 아무개 부인이라고 이렇게 됩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께서는 구약 시대에 나타나야 할 그 이름을 발현으로 삼은 것이 여호와라고 했습니다. 여호와라는 이름은 **군신(軍神)**의 이름입니다. 군신이라는 것은 이스라엘 민족이 믿는 군신일 것입니다.
즉 하나님 군대의 신이라는 뜻입니다. 호세아 12:5에 "저는 만군의 하나님 여호와시라 여호와는 그의 기념 칭호이라 그런즉 너의 하나님께로 돌아와서 인애와 공의를 지키며 항상 너의 하나님을 바라볼지니라"라고 했습니다. 이 말씀에서 보면 만군의 여호와라는 것은 바로 기념 칭호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오늘날 아는 자들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만군의 여호와가 기념 칭호라고 한다면 많은 사람들이 이상하게 생각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에 있는데로 믿어야 할 줄로 믿습니다.하나님을 군신의 하나님으로 바라보는 자는 사랑을 느끼지 못하고 엄하게 느끼니 공포와 두려움의 대상이 되는 것입니다. 그래서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은 방편상으로 천사가 출현을 하게 됩니다. 천사가 출현해서 하나님의 일을 대행하는 일을 하게 되는데 그 천사를 오늘날까지 많은 성도들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으로만 알아 왔습니다.
소제목 3 — 군신의 하나님과 아버지 하나님의 차이
출애굽기 13장 4절에 "산에서 무리의 소리가 남이여 많은 백성의 소리 같으니 곧 열국 민족이 함께 모여 떠드는 소리라 만군의 여호와에서 싸움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라고 했습니다. 만군이란 일만 만(萬), 군사 군(軍), 즉 일만의 군사, 즉 많은 군사를 뜻합니다. '만군의 여호와에서 싸움을 위하여 즉 전쟁을 위하여 군대를 검열하심이로다'라고 한 것은 결론적으로 하나님은 군신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시대에는 군신으로 나타납니다. 그래서 구약 성경을 보면 만군의 여호와란 말이 수없이 나옵니다. 그러나신약 시대에 와서는 만군의 여호와란 말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래서 신약 성경에는 없습니다. 참 묘하지 않습니까? 구약의 하나님은 엄한 군법을 다스리는 군신의 재판관으로 계셨기 때문에 구약 시대는 조금만 잘못하여 범죄하여도 그냥 돌로 쳐 죽이고 염병 들어 죽고 벼락 맞아 죽고 만가지 법으로 심판을 받게 되어 있었습니다. 용서라는 것이 없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의 심판을 피할 수가 없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군신인 것입니다. 그래서 지금 군신의 시대에 살고 있는 군의 신,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교회들이 심각하다는 것입니다. 참 하나님 아버지를 믿는 자와 만군의 여호와 하나님을 믿는 자는 다릅니다. 그래서 군신의 하나님이라는 것을 알아보기 위해서 한 구절 더 보겠습니다.
결론
예수님은 요한복음 17장 3절에서 분명히 말씀하셨습니다. "영생은 곧 유일하신 참 하나님과 그가 보내신 자 예수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라고 했습니다. 참 하나님을 아는 것이 곧 영생입니다. 단순히 하나님이라는 이름을 부르는 것이 아니라, 어떤 하나님인지를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구약의 군신 여호와는 엄한 법과 심판으로 통치하시는 하나님이셨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나타나신 아버지 하나님은 사랑과 긍휼의 하나님이십니다. 이 두 하나님을 구별하지 못한다면 우리의 신앙은 방향을 잃게 됩니다.
지금 여러분이 믿고 있는 하나님이 참 하나님 아버지이신지 한 번 말씀 앞에서 진지하게 성찰해 보시기를 권면드립니다. 참 하나님 아버지를 아는 것이 곧 영생이요, 구원이요, 치유입니다. 후편에서는 불꽃 가운데 나타나신 여호와의 신이 어떤 신이었는지, 그리고 신약의 아버지 하나님이 왜 전혀 다른 분인지를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말씀이 여러분의 눈과 귀를 열어 새 생명을 주시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 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제목: 후편[겔9장] 가증한 것의 실체 와 때를 분별 하는 지혜, 인침 받은 자 (0) | 2026.05.01 |
|---|---|
| b제목: 전편[겔9장] 먹그릇 찬 서기관과 구원의 조건, 내 성소에서 시작하라 (0) | 2026.05.01 |
| b제목: 후편[사26장] 이슬 부활과 밀실에 들어갈 시기, 밀실 구원의 결말 (0) | 2026.04.30 |
| b제목: 전편[사26장] 환란은 하나님께 나가는 문이다 밀실은 어디인가, 구원 받을 자격 (0) | 2026.04.29 |
| b제목: 후편[마27장] 가롯 유다와 은 삼십 — 피밭에 숨겨진 하나님의 작정 계획 (0) | 2026.04.2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