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한글 마 22:29~32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다
우리는 살아있다고 말하면서도 정작 살아있다는 것이 무엇인지 모를 때가 있습니다. 말을 하면서도 그 말의 뜻을 모르고, 물건을 사용하면서도 그 이름을 모르고, 심지어 자기 신랑을 곁에 두고서도 신랑이 없다고 착각하는 자들도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는다 하면서도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깨닫지 못하는 이들이 이 시대에도 얼마나 많습니까. 예수님은 오늘 말씀 앞에 서 있는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기 때문에 크게 오해하고 있다고 하십니다. 그 오해를 걷어내는 것, 그것이 오늘 말씀의 시작이며 생명으로 나아가는 첫걸음입니다.
소 제목1. 성경을 알았더라면 오해하지 않았으리라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너희가 성경도, 하나님의 능력도 알지 못하는고로 오해하였도다" (마 22:29)
사두개인들이 예수님께 나아와 교묘한 질문을 던졌습니다. 형제 일곱이 차례로 한 여인에게 장가들었다가 모두 죽었으니, 부활 때에는 그 여자가 누구의 아내가 되겠느냐는 것이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이 없다고 믿었기에 이 질문으로 부활 신앙을 무너뜨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대답은 단호하고도 명확했습니다. 너희가 성경을 모르기 때문에, 하나님의 능력을 알지 못하기 때문에 오해하는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성경을 알았더라면 오해할 일이 없었을 것이요, 하나님의 능력을 알았더라면 부활을 의심할 이유가 없었을 것입니다. 오늘 이 시대에도 성경을 손에 들고 날마다 읽으면서도 그 말씀의 깊은 뜻을 모르고 그냥 지나치는 이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말씀이 눈앞에 펼쳐져 있어도 마음이 닫혀 있으면 들어도 들리지 않고, 보아도 보이지 않습니다.
오해는 반드시 무지에서 비롯됩니다. 그리고 그 무지는 우리를 죽음의 자리에 오래도록 머물게 합니다. 예수님이 도적같이 오시지않는다 는 말씀을 수차례 들었으면서도 도적같이 온다고 믿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성경을 알지 못하면 이처럼 엉뚱한 방향으로 빠져들게 됩니다.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의 능력을 인정하는 자리에 설 때, 비로소 오해의 안개가 걷히고 부활의 빛이 심령 안으로 들어오기 시작합니다. 성경은 단순한 활자가 아닙니다. 그것은 살아 있는 하나님의 음성이요, 그 음성을 듣는 자는 결코 죽음에 속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천국 백성들이 알아듣는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알아듣지 못하고 오해한다면 그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직 아닌 것입니다.
소 제목2. 부활 때에는 장가도 시집도 아니가고
"부활 때에는 장가도 아니가고 시집도 아니가고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으니라" (마 22:30)
사두개인들의 질문 자체가 이미 근본적인 전제를 잘못 세우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부활을 이 세상 삶의 단순한 연장으로 생각했습니다. 죽었다가 다시 살아나면 이 땅에서의 관계와 질서가 그대로 이어진다고 여겼던 것입니다. 그러나 부활은 이 세상의 질서가 그대로 지속되는 것이 아닙니다. 부활은 전혀 새로운 차원의 생명입니다. 하늘에 있는 천사들과 같이 되는 것입니다. 유대 나라의 풍습에는 형이 자식 없이 죽으면 동생이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는 수혼 제도가 있었습니다. 그것은 이 땅에서의 혈통과 가계를 이어가기 위한 제도였습니다. 그러나 부활의 나라에는 그런 제도가 전혀 필요하지 않습니다. 부활의 세계는 이 땅의 관계망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과의 영적 관계로 살아가는 세계이기 때문입니다.
죽은 영혼들은 장가갈 수도 없고 시집갈 수도 없습니다. 할렐루야! 천국에 가서 귀신들이 시집가고 장가가서 잘 살 줄 알았지만 결단코 그럴 수 없습니다. 예수님을 믿고 죽은 사람들이 천국에서 부부로 다시 만나 살 것이라는 생각은 성경의 가르침과 다릅니다. 부활은 이 세상 관계의 복원이 아니라, 죽음이 완전히 사라진 새 생명의 세계로의 완전한 진입 입니다. 살전5:4에 빛의 아들에게는 도적같이 오시지 않는다고 하셨는데, 그 말씀처럼 부활의 진리를 바로 아는 자는 두려움 없이 그날을 맞이할 수 있습니다. 이 진리를 깨달을 때, 우리는 이 땅의 상실과 이별 앞에서도 흔들리지 않을 수 있습니다. 부활 소망은 막연한 위로가 아니라 성경이 분명히 증거하는 살아있는 사실입니다.
소 제목3.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신 것을 읽어 보지 못하였느냐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요 산 자의 하나님이시니라" (마 22:32)
이것이 오늘 말씀의 가장 깊은 핵심입니다. 예수님은 출애굽기의 말씀을 인용하십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나타나시어 나는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요 야곱의 하나님이로라 하셨을 때,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이미 수백 년 전에 세상을 떠난난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하나님이라고 현재형으로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이 무엇을 의미합니까. 하나님이 자신의 하나님이 되신 자들은 육체가 흙으로 돌아갔어도 결코 죽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죽은 자의 하나님이 아니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연결된 영혼은 살아 있습니다. 육체는 땅으로 돌아가도 그 영은 하나님 앞에 살아 있습니다. 전도서 9:4에 모든 산 자 중에 참예한 자가 소망이 있음은 산 개가 죽은 사자보다 나음이니라 하셨습니다.
살아있는 자에게는 소망이 있고 죽어있는 자에게는 소망이 없습니다. 롬8:9 말씀처럼 만일 하나님의 영이 거하시면 육신에 있지 아니하고 영에 있나니 누구든지 그리스도의 영이 없으면 그리스도의 사람이 아닙니다. 영이 있는 자가 산 자요, 영이 없는 자는 죽은 자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살아있는 자는 말씀을 알아듣고 죽어있는 자는 귀가 막혀 말씀이 들리지 않습니다. 이 자리에서 이 말씀을 듣고도 무엇 때문에 저런 말을 하는지 못 알아듣는 자가 있다면 듣는 귀가 막혔기 때문이요, 그것은 죽은 자의 증거입니다. 오늘 이 말씀이 심령 깊은 곳에 들어와 생명처럼 뜨겁게 느껴진다면, 당신은 살아있는 자입니다. 하나님은 바로 그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결론. 산 자의 하나님 앞에 담대히 서십시오
무리가 예수님의 가르치심을 듣고 놀랐습니다 (마 22:33). 그 놀라움은 단순한 지적 충격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자신들이 얼마나 깊이 오해하고 있었는지를 깨달은 자들의 경이로움이었습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서 우리도 같은 자리에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살아계십니다. 그리고 그분은 산 자의 하나님이십니다. 육체의 고통 가운데 있는 분도, 삶의 막막함 앞에 주저앉은 분도, 사랑하는 이를 먼저 보낸 슬픔 속에 있는 분도 — 하나님은 지금 이 순간 당신의 하나님이십니다. 죽음이 끝이 아닙니다. 부활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부활의 하나님이 오늘도 당신 곁에 살아 역사하고 계십니다. 이 말씀을 굳게 붙드십시오. 산 자의 하나님께서 반드시 당신을 살리십니다.
'여호와의 말씀은 순 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카테고리의 다른 글
| b제목: 후편 [민11장]감추인 만나는 어디에 있는가? 메추라기의 저주, 가나안 땅과 포도송이 (0) | 2026.05.04 |
|---|---|
| b제목: 전편[민11장] 광야에서 터진 원망, 만나의 신비, 썩지 않는 만나를 먹으라 (0) | 2026.05.04 |
| b제목: 후편[단5장] 손가락 의 비밀, 메네 메네 데겔 우바르신, 말씀은 반드시 완성된다 (0) | 2026.05.04 |
| b제목: 전편[단5장] 성전 기명으로 술을 마신 왕과 흰 벽에 나타난 손가락, 다니엘을 부른 왕 (0) | 2026.05.04 |
| b제목: 후편[눅10장]이기는 자와 추수꾼이 찾아야 할 사람,이기는 자의 영광 (0) | 2026.05.04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