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한글 신명기 9장 9~10절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 사십 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돌판의 글은 하나님이 손가락으로 쓰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 위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소제목 1. 사십일 금식과 친수로 쓰신 두 돌판 — 하나님의 간절하신 마음
출애굽기 24장 12절에서 하나님은 모세에게 이렇게 이르셨습니다. "너는 산에 올라 내게로 와서 거기 있으라 너에게 그들을 가르치려고 내가 율법과 계명을 친히 기록한 돌판을 네게 주리라." 하나님이 친히 기록하신 돌판을 주겠다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그 명을 받들어 산으로 올라갑니다. 산에 오르니 육일 동안 구름이 시내산 전체를 덮었고, 칠 일째 되는 날 여호와께서 구름 속에서 모세를 부르셨습니다. 출애굽기 24장 17절은 그 광경을 이렇게 증언합니다. "산 위의 여호와의 영광이 이스라엘 자손의 눈에 맹렬한 불 같이 보였고 모세는 구름 속으로 들어가서 산 위에 올랐으며 사십일 사십야를 산에 있으니라." 하나님의 영광이 불덩어리처럼 시내산 위에 떨어지는 것 같은 장면, 그 가운데 모세는 홀로 서 있었습니다.
칠흑같이 어두운 산, 아무도 없는 그 빈 산에서 모세는 사십일 사십야를 지냈습니다. 그런데 신명기 9장 9절은 그 사십일의 실상을 이렇게 밝힙니다.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사람이 나흘만 물을 마시지 않아도 생명이 위태롭습니다. 그런데 모세는 사십일 동안 물 한 모금 먹지 않고 그 돌판 위에 무릎을 꿇고 기도했습니다. 사십일 기도가 끝나고 하나님께서 두 돌판을 주셨는데 출애굽기 31장 18절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여호와께서 시내산 위에서 모세에게 이르시기를 마친 때에 증거 돌을 모세에게 주시니 이는 돌판이요 하나님이 친히 쓰신 것이더라." 하나님이 친히 쓰셨습니다.
사람의 손이 닿지 않았습니다. 시내산 전체가 바위산이요 나무도 풀도 없는 그 돌 산에서 하늘에서 성령의 불이 내려와 십계명을 새기시고, 하나님이 그 돌판 두 개를 모세의 손에 쥐어 주셨던 것입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이 친수(親手)로 쓰신 것입니다. 그 간절하심 앞에 우리는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왜 돌판이 두 개입니까? 이 십계명은 두 개가 합쳐져야 하나님의 온전한 하나 의 법이 됩니다. 돌판이 두 개라는 것은 말씀에 짝이 있음을 보여주는 것입니다. 이 성경을 크게 나누면 신약과 구약, 두 돌판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신약과 구약이 합쳐져야 비로소 말씀의 짝을 이루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직접 쓰신 그 두 돌판이 우리 손에 들려 있습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손에 쥔 성경입니다. 이 말씀을 가볍게 여기지 마십시오. 이 말씀은 사십일 금식 기도의 열매이며, 하나님의 친수가 새긴 생명의 기록입니다
소제목 2. 던져진 돌판과 예수 그리스도 — 율법은 사랑으로 완성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친수로 만들어 주신 그 돌판이 던져져서 부서졌습니다. 이것은 모세가 분노하여 내던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진노하심이 모세를 통하여 나타난 것으로 믿습니다. 만약 모세가 자의로 던져 부수었다면 그 자리에서 벼락을 맞아 죽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그 이후에도 하나님과 함께하였고, 하나님이 계속 모세와 동행하셨습니다. 그때 금송아지 우상을 섬긴 자들은 금송아지를 부수고 그 가루를 물에 타서 마시게 되었고 마신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모래사장의 해골이 된 그들 가운데서 나온 자녀들만이 가나안 땅에 들어간 것입니다. 말씀을 어긴 자들은 다 죽었습니다. 진리의 말씀을 듣고도 배신하고 떠난 자들,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지 못하고 깨닫지 못하고 지도자의 말을 듣지 않고 나간 자들 — 그들이 바로 금송아지 가루를 먹은 자들입니다.
그러면 이 돌판은 무엇을 상징합니까? 이 돌은 두 말할 나위 없이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돌판이 아닌 다른 양피나 재질은
세월이 지나면 부패합니다. 아무리 좋은 물감으로 기록해도 부패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부패하지 아니하는 돌판에 말씀을 새기셨습니다. 천 년이 지나도 보관만 잘하면 그 각인은 보존될 수 있습니다. 가죽판에 새긴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그리고 예수님은 죄의 십자가를 지심으로써 피의 언약을 이루셨고, 그 던져진 두 돌판의 역사가 우리 시대에 와서 완전히 완성된 줄로 믿습니다. 실은 예수님 시대에 이미 완성되었는데, 완성된 줄도 모르고 이천 년 동안 십계명을 지키려고 무진 애를 썼습니다. 그러나 이제 와서 깨닫게 됩니다. 이제 와서 완성됨을 알았으니 이 시대에 성취된 줄로 믿습니다. 이 율법의 비밀을 깨닫는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지혜를 열어 주지 않으시면 도저히 이해할 수 없는 내용이니 얼마나 놀라운 축복입니까.
로마서 13장 8절의 말씀이 이를 확증합니다. "피차 사랑의 빚 외에는 아무에게든지 아무 빚도 지지 말라 남을 사랑하는 자는 율법을 다 이루었느니라." 예수님의 사랑의 법을 통해서만이 율법은 성취됩니다.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적질 하지 말라, 탐내지 말라 한 것과 그 외에 다른 계명이 있을지라도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신 그 말씀 가운데 다 들었느니라." 이것이 율법의 완성입니다. 로마서 10장 4절은 선포합니다.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 율법이 마쳤습니까? 마쳤습니다. 다 끝났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기독교인들은 왜 찬송가 뒤에 십계명 율법을 붙여가지고 다닙니까? 왜 십계명을 외우려고 애를 씁니까? 율법은 모세가 던져버렸던 그 율법이 그 시대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요 예수님 시대에 이루어졌습니다. 그러므로 던져진 그 돌은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소제목 3. 새 계명 — 사랑이라는 이름의 영원한 돌판
요한복음 13장 34절에서 모세의 계명 대신 새 계명이 선포됩니다.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이 새 계명이 진정한 짝사랑입니다. 혼자 사랑하면 홀사랑 혹은 외사랑이라 말해야 합니다. 짝사랑이란 두 사람이 서로 사랑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그러므로 서로 사랑하는 이 짝사랑이야말로 진짜 사랑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계명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이 나를 알아주면 그것이 하나님의 사랑인 것입니다. 이 사랑 안에 십계명이 다 담겨 있고, 율법 전체가 완성됩니다. 이 사랑은 이 세상에 없는 사랑입니다. 여러분은 세상에 없는 사랑을 받은 것입니다.
요한일서 2장 7절에서 8절의 말씀이 이 진리를 더욱 깊이 확인해 줍니다. "사랑하는 자 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 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라고 하셨습니다. 이 말씀이 새 말씀인 것 같지만 이 말씀은 옛날부터 성경에 있었던 것입니다. 이 옛 계명은 곧 새 계명입니다. 율법은 바로 이 새 계명 속에 다 들어 있습니다. 서로 사랑하는 사랑의 계명을 지킴으로 말미암아, 구약 시대의 모세가 던져 버린 돌판은 깨어져서 심판이 되었지만, 이제 이 새 계명은 던지면 던질수록 더욱 폭발하여 구원의 큰 축복이 나타나게 될 줄로 믿습니다.
모세 때의 돌판은 던지면 깨어지는 돌이었습니다. 그러나 사랑의 돌은 아무리 던져도 깨어지지 않는 돌입니다. 사랑한다는 소리를 해서 미워할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사랑한다는 말은 100번 해도 괜찮고 1000번을 해도 듣기 싫은 소리가 아닙니다. 아무리 많이 해도 잔소리가 아닌 소리는 사랑의 소리, 생명의 소리 밖에 없습니다. 犬猿之間 [견원지간] 같은 사람들은 그리스도의 제자 될 자격이 없는 사람들이요, 그런 사람들은 하늘나라가 이루어질 때에 왼쪽에 있을 것입니다 (마 25:41). 이 새 계명은 서로 사랑하라는 계명으로써 이 계명 안에서 모든 율법이 다 완성됩니다.
결론
7. 사랑하는 자 들아 내가 새 계명을 너희에게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옛 계명은 너희의 들은 바 말씀이거니와 8. 다시 내가 너희에게 새 계명을 쓰노니 저에게 와 너희에게도 참된 것이라 이는 어두움이 지나가고 참 빛이 벌써 비침이니라

새 계명을 쓰는 것이 아니라 너희가 처음부터 가진 옛 계명이니 이 내용의 말씀이 새 말씀인데 이 말씀이 예부터 성경에 있었던 줄로 믿습니다. 이 옛 계명이 바로 새 계명입니다. 그러므로 지금까지 거의 모두가 눈이 먼 자들이었습니다. 그러면 율법은 이 새 계명 속에 있으니 이 새 계명은 새 것이 아니니 옛 계명이라고 했습니다. 이제부터 구약시대의 모세가 던져버린 돌판은 깨어져서 심판이 되었지만 앞으로 이 새 계명은 던지면 던질수록 더욱 폭발하여 구원의 큰 축복으로 결실되게 될 줄 믿습니다. 이 패역한 시대에 사랑의 새 계명을 전파하는 빛나고 찬란한 돌판이 되시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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