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성경을 읽다 보면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 내 양을 치라, 내 양을 먹이라"고 세 번 거듭 말씀하신 장면이 나옵니다. 그 말씀을 하신 뒤 예수님은 곧이어 베드로가 어떤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인지를 예언하셨습니다. 베드로는 결국 십자가에 거꾸로 달려 순교하였고, 요한은 밧모섬에서 계시록을 받았습니다. 두 사람이 받은 맥은 달랐습니다. 베드로는 현재형 말씀의 맥을, 요한은 미래형 말씀의 맥을 이어받았습니다. 그런데 이 두 맥이 합쳐져 오늘의 교회를 이루고 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습니다. 더 나아가 그 맥 안에 하나님의 모든 보화와 축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은 하늘로 부터 내려오는 진리의 성령을 받지 못하면 도저히 알 수가 없는 숨어 있는 내용 입니다. 오늘은 요한의 맥이 무엇이고, 우뢰의 소리가 계시록과 어떻게 연결되며, 바른 신앙 고백 안에 어떤 축복이 깃들어 있는지를 말씀을 따라 살펴보고자 합니다.
개역한글 요 21:18~21
18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젊어서는 네가 스스로 띠 띠고 원하는 곳으로 다녔거니와 늙어서는 네 팔을 벌리리니 남이 네게 띠 띠우고 원치 아니하는 곳으로 데려가리라 19 이 말씀을 하심은 베드로가 어떠한 죽음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릴 것을 가리키심이러라 이 말씀을 하시고 베드로에게 이르시되 나를 따르라 하시니 20 베드로가 돌이켜 예수의 사랑하시는 그 제자가 따르는 것을 보니 그는 만찬석에서 예수의 품에 의지하여 주여 주를 파는 자가 누구오니이까 묻던 자러라
21 이에 베드로가 그를 보고 예수께 여짜오되 주여 이 사람은 어떻게 되겠삽나이까 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23 이 말씀이 형제들에게 나가서 그 제자는 죽지 아니하겠다 하였으나 예수의 말씀은 그가 죽지 않겠다 하신 것이 아니라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찌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하신 것이러라
소제목 1. 베드로의 맥과 요한의 맥 — 현재와 미래를 잇는 두 기둥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세 번의 "먹이라"는 말씀을 통해 현재적인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베드로가 받은 맥은 지금 살아 있는 양들을 돌보는 현재의 말씀이었습니다. 베드로는 바른 신앙 고백을 하였기 때문에 하나님의 엄청난 축복을 받았고, 천국 열쇠를 약속받았습니다. 그런데 중요한 것은 베드로의 이 사명 뒤에 예수님이 곧바로 요한의 미래적 사명을 언급하셨다는 점입니다. 요한복음 21:22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예수님은 요한을 "내가 올 때까지 머물게 하고자" 하셨습니다.
이것은 요한이 미래적인 말씀, 곧 계시록의 말씀을 받아 기록할 자임을 암시하신 것입니다. 베드로의 말씀은 "지금 먹이라"는 현재의 명령이었지만, 요한의 말씀은 "올 때까지", 즉 종말을 향하여 나아가는 미래의 말씀이었습니다. 막 3:17에 보면 예수님이 야고보와 요한에게 '보아너게', 즉 '우레의 아들들'이라는 이름을 주셨습니다. 요한은 우뢰의 아들이었습니다. 우뢰 소리는 멀리서 들려오는 소리입니다. 그 소리는 공포와 두려움을 주기도 하지만, 동시에 먼 곳에서 오는 신호이기도 합니다. 또한 우뢰 소리가 나기 전에는 반드시 번개의 빛이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요한에게 주어진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요한은 계시록에서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계시를 받는 자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 계시록은 단순히 어떤 개인이나 교단의 해석으로 완성되는 것이 아니라, 바른 신앙 고백을 한 자들에게만 온전히 이해될 수 있는 하늘의 언어입니다. 현재의 베드로 맥과 미래의 요한 맥이 함께 흐를 때, 하나님의 교회는 온전해집니다. 현재 살아있는 양들을 먹이면서 동시에 미래의 하나님 나라를 바라보는 것, 이것이 진정한 교회의 사명입니다. 베드로는 자기 따로, 요한은 요한 따로가 아니었습니다. 예수님은 두 사람 모두를 품으시며 각자의 사명을 주셨습니다.
소제목 2. 우뢰의 소리 — 계시록에 인봉된 일곱 우뢰의 비밀
계시록을 읽다 보면 낯선 표현이 등장합니다. 바로 '일곱 우뢰'입니다. 계시록 10장에서 힘센 천사가 소리를 지를 때 일곱 우뢰가 그 소리를 말하였다고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하나님께서 요한에게 "일곱 우뢰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다는 점입니다.계시록 10:4 "일곱 우뢰가 발할 때에 내가 기록하려고 하다가 곧 들으니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 하더라"일곱 우뢰의 소리는 벼락치는 소리가 아닙니다. 그것은 성경의 우뢰 소리, 즉
하나님의 말씀 소리입니다.
그렇다면 왜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기록하고자 했으나 하늘에서 소리가 나서 말하기를 "일곱 우뢰가 말한 것을 인봉하고 기록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깨달아야 할 것은 일곱 우뢰 소리의 비밀을 기록으로 남기는 것이 아니라, 바른 신앙 고백을 하는 자들, 즉 요한과 같은 마음을 가진 자들에게 인봉된 상태로 전달된다는 것입니다. 이사야 55:11에서는 "내 입에서 나가는 말도 헛되이 내게로 돌아오지 아니하고 나의 뜻을 이루며 나의 명하여 보낸 일에 형통하리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이루어집니다.
그러므로 일곱 우뢰의 비밀은 인봉되어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하나님 안에서는 이미 나간 말씀으로 반드시 이루어질 것입니다. 계시록은 전체의 90% 이상이 우뢰 소리, 즉 우뢰의 말씀으로 가득 채워져 있습니다. 계 1:5의 "머리가 되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은혜와 평강이 너희에게 있기를 원하노라"는 고한 말씀도 우뢰의 말씀을 통해서만 온전히 받을 수 있는 은혜와 평강입니다. 새 하늘과 새 땅의 역사도 계시록의 우뢰의 말씀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 바른 신앙 고백을 하지 않은 자들이 아무리 계시록을 들여다보아도 그 비밀을 알 수 없는 것은, 초등학문에 나오는 내용도 모르는 사람이 대학원에서 고차원의 문제를 풀 수 없는 것과 같습니다. 영적 순서가 있습니다. 바른 고백 위에 바른 이해가 세워집니다.
소제목 3. 바른 신앙 고백 — 고백 안에 숨겨진 보화와 축복
요한복음 19:26 "예수께서 그 모친과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그 모친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여기서 우리가 질문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예수님의 육신의 형제도 있는데, 왜 굳이 요한을 어머니의 아들로 삼으셨습니까? 단순히 홀로 된 어머니를 위한 효도의 차원이었을까요? 그것만이 아닙니다. 예수님은 성모 마리아를 통해 성령으로 잉태된 분이십니다. 그 성령의 잉태의 맥, 곧 하늘의 맥을 이어받은 것이 사도 요한이었기 때문에 예수님은 요한을 어머니의 아들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성령으로 잉태된 예수님의 맥을 이어받은 자와 어머니 마리아 사이에는 영적 모자 관계가 성립됩니다. 이것은 육신의 혈통이 아니라, 하늘의 맥으로 이어진 영적 가족입니다.그렇다면 오늘 우리는 어떻습니까? 바른 신앙 고백을 하고, 베드로의 반석 위에 세워진 교회에 속하여, 요한이 받은 하늘의 맥 — 우뢰의 말씀, 계시록의 말씀 — 을 이어받은 자는 바로 영적으로 어머니의 아들이 된 자입니다. 어머니의 아들이 된 자는 두려울 것이 없습니다. 우뢰의 말씀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 지구상의 어떠한 무기보다도 위력 있는 말씀이므로 천하에 두려울 것이 없는 줄 믿습니다.
마태복음 7:28에서 무리들이 예수님의 가르치심에 놀란 것은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세 있는 자와 같고 저희 서기관들과 같지아니함이었더라"고 하였습니다. 서기관들의 말씀은 지식의 나열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은 권세였습니다. 마찬가지로 하늘의 맥을 이어받은 자가 전하는 말씀에는 그 권세가 함께합니다. 우뢰의 말씀을 두려워하는 자와 두려워하지 않는 자가 이 한 가지로 구별됩니다. 참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사람은 그 말씀 앞에서 두려워합니다. 그러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말씀도 두려워하지 않고 가르치는 자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가진 자와 잃은 자의 구별이며, 바른 깨달음과 바른 신앙 고백을 한 자들 위에 우뢰의 말씀이 머물러 있다는 증거입니다.
결론. 재림의 날까지 — 베드로의 반석과 요한의 맥이 완성되는 그날
예수님은 요한에 대하여 이런 예언적 말씀을 하셨습니다. 요한복음 21:2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올 때까지 그를 머물게 하고자 할지라도 네게 무슨 상관이냐 너는 나를 따르라 하시더라 내가 (예수님이) 올 때 (재림) 까지. 이 말씀은 단순히 요한 개인에 대한 말씀이 아닙니다. 요한이 받은 하늘의 맥, 곧 계시록의 말씀은 예수님이 재림하시는 그날까지 이 땅 위에 머물러야 할 말씀입니다. 주님이 이 땅 위에 오실 때에 그리스도의 나라가 완성될 것이고, 그 때에 베드로의 반석 교회와 요한의 우뢰 맥이 하나로 완성됩니다. 오늘 이 시대는 어떤 시대입니까? 재림이 가까운 시대입니다.
그렇기에 요한의 맥, 즉 계시록의 말씀이 더욱 살아 역사해야 할 때입니다. 그 말씀을 받은 자들이 바른 신앙 고백의 반석 위에 서 있을 때, 예수님의 예언적 축복이 성취됩니다. 우리의 말씀을 두려워하며 받아들이는 자, 바른 신앙 고백을 하는 자, 요한처럼 하늘의 맥을 이어받은 자들 위에 하나님의 모든 보화와 축복이 임합니다. 베드로의 반석 위에 요한의 하늘 맥이 임할 때, 그곳이 바로 살아있는 교회입니다. 건물의 크기가 아니라 고백의 깊이가 교회를 결정합니다. 그 고백 위에 주님은 재림의 날까지 당신의 말씀을 머물게 하십니다. 이 말씀을 읽는 모든 분이, 베드로의 고백을 하고, 요한의 맥을 이어받아, 주님 오시는 그날까지 땅 위에서 그리스도의 나라를 증거하는 복된 자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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