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한글 신명기 9:9-10
9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10 여호와께서 그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소제목 1. 시내산 네번 올라간 모세
신명기 9장 9절에서 10절의 말씀은 읽을수록 경이롭습니다. "그 때에 내가 돌판들 곧 여호와께서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돌판들을 받으려고 산에 올라가서 사십 주야를 산에 거하며 떡도 먹지 아니하고 물도 마시지 아니하였더니 여호와께서 두 돌판을 내게 주셨나니 그 판의 글은 하나님이 친수로 기록하신 것이요 너희 총회 날에 여호와께서 산상 불 가운데서 너희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계명이 사람의 손이 아닌, 하나님이 친히 손가락으로 새기신 돌판으로 주어졌다는 것, 그것 하나만으로도 이 말씀은 천지를 흔드는 무게를 지닙니다.
그런데 많은 성도들이 간과하는 사실이 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 호렙에 오른 것이 단 한 번이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모세는 무려려네 번이나 그 산을 올라갔으며, 매번 동일한 말씀을 받았습니다. 왜 한 번이면 족할 것을 네 번씩이나 올라갔겠습니까? 이 물음 앞에서 우리는 멈춰 서야 합니다. 성경의 기록은 단순한 역사의 나열이 아닙니다. 그것은 훗날의 예언이요, 오늘 이 시대에 이루어질 일들에 대한 하나님의 암호문입니다. 하나의 역사처럼 보이지만, 그 역사 안에 비유가 담기고, 그 비유 속에 예언이 숨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왜 네 번이냐"는 질문은 단순한 역사적 호기심이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여는 열쇠가 됩니다.
처음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막에 두고 시내산에 올라갈 때, 그 첫 번째 올라감에서 하나님은 돌판 대신 말로만 언약을 받아 행 할 것을 명하셨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말로 받아들였던 것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출발하여 수많은 기사와 이적과 표적을 보면서 드디어 시내산 아래 광야까지 도달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하나님을 열심히 잘 믿는 것 같으면서도 계속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 하면서도 범법 행위를 했습니다. 그러므로 이 돌판을 받게 되기까지의 과정을 우리가 깨달아야만, 십계명의 율법이 오늘날 이 시대에 어떤 의미로 이루어지고 있는지를 바르게 알 수 있습니다.
소제목 2. 언약의 피와 제사장 나라 — 말씀이 문서화되어야 하는 이유
출애굽기 19장 1절의 말씀을 보면, 이스라엘 자손이 애굽 땅에서 나온 지 삼 월이 되어 시내 광야에 이르러 장막을 쳤고,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들을 불러 이르시길 — "나는 이같이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르고 나의 애굽 사람에게 어떻게 행하였음과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 세계가 다 내게 속하였나니 너희가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너희는 열국 중에서 내 소유가 되겠고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 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하나님이 말씀하신 '독수리의 날개'는 동방의 독수리, 곧 나의 모략을 이룰 사람이라고 이사야 46장 11절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독수리는 사람을 상징합니다.
독수리의 날개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업어 여기까지 인도했다는 것은, 이것을 보고 내 말을 듣고 내 마음을 따르면 말미암아 너희들이 제사장 나라에 들어가게 되고 거룩한 백성이 되는 것을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알려주어라, 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제사장 나라에 들어가는 축복을 주신다고 하는데, 너희는 지킬 것이냐 안 지킬 것이냐 물으셨을 때 "이 백성들이 지키겠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화가 나셨습니까? 말로만 한 것은 벌을 내릴 수 있는 근거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에서도 그렇습니다. 말로 한 것은 안 했다고 하면 그뿐이니까, 법정에 가서도 안 했다고 하면 그만이지만, 글로 표시해 놓은 것은 증거가 있기 때문에 안 했다고 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벌을 안 내렸던 것입니다. 이렇게 해서 이제 하나님께서 화가 나기 시작했습니다. 화가 나서 안 되겠다 이제 문서화해야 되겠다 하신 것입니다. 문서화되고 성문화되면 그 법을 지키지 아니하는 사람들은 벌금을 내든지 벌을 받아야 합니다.
법이 정해지기 전에는 지켜라고 하면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나 법이 정해져서 법이 선포되면 지켜야 합니다. 안 지킬 수가 없습니다. 기초 질서를 지켜라, 지켜라 십 년을 해도 백성이 안 지키므로 고속도로에서 갓길로 운행 하지 말라고 해도 갑니다. 그래서 말로 해서 안 되니까 고속도로의 갓길을 달려가는 사람은 벌금 얼마라는 엄한 법을 세워 놓으니까 할 수 없이 지킵니다. 못 지키는 사람은 실제로 면허정지나 벌금을 물게 됩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법도 처음에 말씀으로 지키라고 했을 때 지켰으면 그들에게 제사장 나라를 주고, 그들을 거룩한 백성이 되게 하심과 동시에 그때 하나님 나라가 왔을 것입니다.
소제목 3. 소를 잡고 소피를 뿌린 것 — 구약, 신약, 그리고 비둘기의 시대
출애굽기 24장 3절의 말씀입니다. "모세가 와서 여호와의 모든 말씀과 그 모든 율례를 백성에게 고하매 그들이 한 소리로 응답하여 가로되 여호와의 명하신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그리고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 단을 쌓고 이스라엘 십이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 이스라엘 자손의 청년들을 보내어 번제와 소를 화목제로 여호와께 드리게 하고 언약서를 가져 백성에게 낭독하여 들리니 그들이 가로되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우리가 준행하리이다 하였고 모세가 그 피를 취하여 백성에게 뿌려 가로되 이는 여호와께서 이 모든 말씀에 대하여 너희와 세우신 언약의 피니라 소를 잡아서 소의 피를 뿌렸다는 것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질문이 나옵니다. 왜 양을 잡아서 양의 피를 뿌리지 않고 소를 뿌렸느냐? 기성 교회의 성경 내용의 깊이를 모르는 사람들은 제단에 뿌린 피가 전부 양의 피인 줄 압니다. 99%가 전부 언약제에 양의 피를 뿌린 줄 아는데 여기서는 소 피를 뿌렸습니다. 왜 소 피를 뿌렸느냐? 양의 피를 뿌리든지 비둘기 피를 뿌릴수도 있는데 왜 소피를 뿌렸는가에 관해서는 조금 있다가 설명하겠습니다. 히브리서 9장 13절에서 14절 말씀에서 "염소와 황소의 피와 및 암송아지의 재로 부정한 자에게 뿌려 그 육체를 정결케 하여 거룩케 하거든 하물며 영원하신 성령으로 말미암아 흠 없는 자기를 하나님께 드린 그리스도의 피가 어찌 너희 양심으로 죽은 행실에서 깨끗하게 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을 섬기게 못하겠느냐"고 하셨습니다.
구약 때는 죄를 범하면 염소와 송아지 피를 제단에 뿌려서 사람 대신에 짐승이 죽음을 당했습니다. 애굽에서 이스라엘 사람들은 소를 숭배 했습니다. 신약에 와서는 사람 대신 짐승의 죽음이 아니라 예수가 죽었단 말입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단 말입니다. 주님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대속해 주셨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는 무슨 시대냐? 성령을 상징한 비둘기 시대입니다. 구약 시대는 소의 시대였습니다. 신약 시대는 양의 시대, 예수님은 어린 양으로 오셨습니다. 그래서 신약 시대는 양의 시대입니다. 그렇다면 마지막 때는 비둘기 시대, 성령의 시대입니다. 이 세 시대가 구분되어 흐르고 있으며, 우리는 지금 그 마지막 시대, 비둘기의 날개로 인도되는 성령의 시대 한가운데 서 있습니다.
결론 — 말씀은 살아 있고, 오늘도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성경의 기록은 단순히 옛날 이야기가 아닙니다. 모세가 사십 일을 떡도 먹지 않고 물도 마시지 않으며 산에 머물렀던 그 간절함, 하나님이 친수로 돌판에 새기셨던 그 계명, 소의 피로 맺은 언약이 오늘 이 시대에 어떻게 성취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깨달아야 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지키지 않으면 벌을 피할 수 없고, 문서화된 법은 반드시 이행되어야 하며, 구약의 소 시대에서 신약의 양의 시대를 지나 이제 성령의 비둘기 시대가 도래했다는 사실은 — 바로 지금 이 순간 우리가 어느 때에 살고 있는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이 친수로 새기신 말씀은 변하지 않습니다. 돌판은 깨져도 말씀은 영원합니다. 그리고 그 말씀은 오늘 당신의 삶 한가운데서 이루어지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제사장 나라의 문이 열렸고, 거룩한 백성이 될 기회가 주어졌습니다. 지킬 것이냐, 안 지킬 것이냐 — 그 선택 앞에 지금 우리 모두가 서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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