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 한글- 요한복음 [John 10:1~9]
소제목 1. 양의 문으로 들어가는 자만이 참 목자다
1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양의 우리에 문으로 들어가지 아니하고 다른 데로 넘어가는 자는 절도며 강도요 2 문으로 들어가는 이는 양의 목자라 3 문지기는 그를 위하여 문을 열고 양은 그의 음성을 듣나니 그가 자기 양의 이름을 각각 불러 인도하여 내느니라
4 자기 양을 다 내어 놓은 후에 앞서가면 양들이 그의 음성을 아는 고로 따라오되 5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리어 도망하느니라 6 예수께서 이 비유로 저희에게 말씀하셨으나 저희는 그 하신 말씀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니라
7 그러므로 예수께서 다시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말하노니 나는 양의 문이라
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9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얻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참 목자는 양들의 이름을 각각 부른다. 이름을 부른다는 것은 한 사람 한 사람을 인격적으로 알고 있다는 뜻이다. 그러나 강도는 이름을 부르지 않는다. 그저 무리를 몰아갈 뿐이다. 양들이 타인의 음성은 알지 못하는 고로 타인을 따르지 아니하고 도망한다고 하셨다. 참 목자의 음성에는 생명이 있으며 양들은 그 음성을 본능적으로 안다.
개신교인 수가 제일 많았던 1980~90년대는 1,200만 명이 등록 교인이라는 통계가 있었으나 현재는 800만 명 정도의 기독교인들이 교회에 나온다고 한다. 교회건물에 문이 없는 곳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러나 말씀에서 문은 건물의 문이 아니라 영적인 문을 통해서 들어왔는가를 물어야 한다. 문의 비밀 속에는 엄청난 하늘의 비밀이 숨겨져 있으며 이 말씀 안에 구원의 길이 있다.
소제목 2. 내 이웃이 누구입니까
율법사가 예수님을 시험하여 물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님께서는 성경에 무엇이라 기록되어 있느냐고 되물으셨다. 율법사가 대답하기를 마음을 다하고 힘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주 너의 하나님을 섬기고 또 네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 하였나이다라고 했다.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라 하셨다. 그러나 율법사는 의도적으로 예수님을 곤경에 빠트리려고 왔기에 할 말이 없어지자 또 묻기를 그럼 내 이웃이 누구오니이까 라고 물어봤다. 누가복음 [Luke 10:25~37] 어떤 율법사가 일어나 예수를 시험하여 선생님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어떤 사람이 예루살렘에서 여리고로 내려가다가 강도를 만나매 강도들이 그 옷을 벗기고 때려 거반 죽은 것을 버리고 갔더라
마침 한 제사장이 그 길로 내려가다가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고 또 이와 같이 한 레위인도 그곳에 이르러 그를 보고 피하여 지나가되 어떤 사마리아인은 여행하는 중 거기 이르러 그를 보고 불쌍히 여겨 가까이 가서 기름과 포도주를 그 상처에 붓고 싸매고 자기 짐승에 태워 주막으로 데리고 가서 돌보아 주고
이튿날에 데나리온 둘을 내어 주막 주인에게 주며 가로되 이 사람을 돌보아 주라 부비가 더 들면 내가 돌아올 때에 갚으리라 하였으니 네 의견에는 이 세 사람 중에 누가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겠느냐 가로되 자비를 베푼 자니이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가서 너도 이와 같이 하라 하시니라
이 말씀을 교회에서는 선한 사마리아 사람에 관한 말씀으로 가르쳐 왔다. 그러나 이 말씀의 핵심은 사마리아 사람의 선한 행실이 아니라. 율법사가 물었던 것은 내 이웃이 누구인가였다. 그 질문에 대한 답으로 예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다. 제사장이면 선한 일을 많이 하고 많은 사람을 의로 인도하는 종교 지도자인데 왜 그냥 지나갔는가. 레위인도 그냥 지나갔다.
레위인은 원래 제사장이 되는 족속으로 열두 지파 가운데 가장 거룩한 지파로서의 자부심을 가진 자들이다. 쉽게 설명하자면 레위인은 전부 신학을 한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러나 그도 그냥 지나가 버렸다. 이 말씀의 내용은 선하고 착한 일을 한 사마리아 사람의 내용이 아닌 것이다.
소제목 3. 강도가 누구인지 알아야 이웃이 될 수 있다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려면 먼저 강도가 누구인지를 알아야 한다. 강도 만난 자도 알 수 있다. 지금도 주변을 둘러보면 강도 만난 자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그러나 강도 만난 자를 만나려면 갖추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바로 기름과 포도주를 갖고 있어야 한다. 그것이 무슨 기름인가를 알아야 하며 또 무엇이 포도주인지 알아야 될 것이다.
요한일서 [1John 2:20] 너희는 거룩하신 자에게서 기름 부음을 받고 모든 것을 아느니라 내가 너희에게 쓴 것은 너희가 진리를 알지 못함을 인함이 아니라 너희가 앎을 인함이요 또 모든 거짓은 진리에서 나지 않음을 인함이니라 기름 부음을 받으면 진리를 안다고 했다. 그러므로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은 바로 진리를 아는 자인 줄 믿는다.
곧 진리를 아는 것이 강도 만난 자의 상처를 싸매주는 기름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기름도 없고 포도주도 없는 사람이 강도 만난 자의 이웃이 되어야 영생을 얻는다고 성경에 기록되어 있으니 강도 만난 자를 찾아갔기는 갔는데 상처에 발라 줄 기름도 없고 포도주도 없어서는 안 될 것이다. 그렇다면 강도는 과연 누구인가.
마태복음 [Matthew 21:12~13] 예수께서 성전에 들어가사 성전 안에서 매매하는 모든 자를 내어쫓으시며 돈 바꾸는 자들의 상과 비둘기 파는 자들의 의자를 둘러엎으시고 저희에게 이르시되 기록된 바 내 집은 기도하는 집이라 일컬음을 받으리라 하였거늘 너희는 강도의 굴혈을 만드는도다 하시니라
유월절이 가까웠다.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릴 때에 양이나 염소나 비둘기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멀리서 찾아온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제사 드릴 비둘기를 가져올 수가 없으므로 현지에서 비둘기를 사서 하나님 성전에서 제사를 드리곤 하였다.
그렇게 되고 보니 자연적으로 비둘기 장사꾼이 성전 앞마당에서 비둘기를 팔기 시작했고 비둘기 값이 오르기 시작하여 2~3배 혹은 멀리서 온 사람들은 10배까지 높은 값을 주고 비둘기를 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높은 값으로 사서 하나님 앞에 제사를 드리려 하니까 강도 맞은 것과 다름이 없었던 것이다.
호세아 [Hosea 6:9]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 길에서 살인하니 저희가 사악을 행하였느니라
강도 떼가 사람을 기다린 것과 같이 제사장의 무리가 세겜에서 사람을 죽이고 살인을 행하니 이 큰 죄악을 무엇으로 너희가 갚을 수 있겠느냐는 말씀이다.
제사장 곧 하나님의 제사를 드리는 목자가 강도 떼가 되어 버리고 말았다는 것이다. 예수님께서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라고 말씀하셨다. 요한복음 [John 10:8] 나보다 먼저 온 자는 다 절도요 강도니 양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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