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한글- 창세기 [Genesis 9:20~27]
노아가 농업을 시작하여 포도나무를 심었더니 21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서 벌거벗은지라 22 가나안의 아비 함이 그 아비의 하체를 보고 밖으로 나가서 두 형제에게 고하매 23 셈과 야벳이 옷을 취하여 자기들의 어깨에 메고 뒷걸음쳐 들어가서 아비의 하체에 덮었으며 그들이 얼굴을 돌이키고 그 아비의 하체를 보지 아니하였더라
24 노아가 술이 깨어 그 작은 아들이 자기에게 행한 일을 알고 25이에 가로되 가나안은 저주를 받아 그 형제의 종들의 종이 되기를 원하노라 26 또 가로되 셈의 하나님 여호와를 찬송하리로다 가나안은 셈의 종이 되고 27 하나님이 야벳을 창대케 하사 셈의 장막에 거하게 하시고 가나안은 그의 종이 되게 하시기를 원하노라 하였더라
마태복음[Matthew 24:37] 인자의 날은 노아 때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노아의 이야기는 단순한 홍수 사건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를 통해 이 세대의 현실을 알게 하시고 미래를 아는 큰 축복의 시간을 허락하셨습니다.
신의 글로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이므로 이 말씀을 천 번 만 번 읽고 외워도 그 깊은 뜻을 다 헤아리기 어렵습니다.
오늘은 눈이 더욱 활짝 열리는 축복의 시간이 되기를 원합니다.
소 제목 1. 노아, 인류의 새 시조가 되다
노아라는 이름만 들어도 신비한 존재입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홍수로 심판하실 때에 사십 주야를 하늘에서 비가 내려 홍수가 쳤다고 알고 있지만 성경의 기록은 그렇지 않습니다. 창세기 [Genesis 7:11~12]
노아 육백세 되던 해 이월 곧 그 달 십칠일이라 그 날에 큰 깊음의 샘들이 터지며 하늘의 창들이 열려 사십 주야를 비가 땅에 쏟아졌더라
땅의 물이 솟아났습니다. 비도 오지 않고 구름도 끼지 않고 멀쩡하게 맑았는데 물이 막 솟아 나온 것입니다.
인간이 상상할 수 없는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물 심판을 이루실 것을 보여주신 것입니다. 사십 주야의 비가 와서 많은 사람들과 짐승들이 물에 갇혀서 죽음을 당했지만 노아는 놀임을 받았습니다. 왜 노아입니까?
노아만이 죽음에서 놓임을 받았기 때문에 노아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이름들은 우리 한국말로 해석을 하게 되면 참 합당하구나 마치 한국 백성을 염두에 두고 작명하신 것이 아닌가 라고 생각하게 됩니다. 아브라함의 아들 이삭은 우리가 이삭이라고 말하면 곡식의 열매를 가리켜 이삭이라고 말합니다.
로마서 [Romans9:7] 이삭으로 말미암지 않고는 하나님의 씨앗이 될 자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이삭이 아니면 실제로 씨앗이 될 수 없지 않습니까? 모세는 바닷가에서 수영을 하다가 물에서 건져낸 모래를 가리켜 경상도 사투리로 모세라고 합니다.
물에서 건졌다는 뜻입니다. 모세는 어디서 건짐을 받았습니까? 물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모세라고 하는 것입니다.
노아의 사건은 새 창조의 사건입니다.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셨습니다. 창세기[Genesis1:27] 하나님이 자기 형상 곧 하나님의 형상대로 사람을 창조하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시고라고 기록합니다.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고 정복하라는 것은 많은 자녀들을 낳으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인간이 이 지구를 지배하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런데 노아 때에 많은 사람들이 다 죽음을 당하고 노아와 그 일곱 식구만이 구원을 받게 된 것입니다. 그 때에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생육하고 번성하고 충만하라는 그 말씀을 노아에게 다시 하신 것입니다. 바로 하나님께서 인간을 창조하시고 난 뒤에 사람에게 하셨던 그 말씀을 다시 하신 것입니다. 창세기[Genesis 9:7] 너희는 생육하고 번성하며 땅에 편만하여 그 중에서 번성하라 하셨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이러므로 노아뿐만 아니라 노아의 아들들까지도 큰 축복을 받게 되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노아의 가족들이 큰 축복을 받게 되었는데 하나님께서는 노아에게 언약을 하셨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리라 하시고 무지개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왜 그렇냐 하면 아담이 인류의 시조가 아니라 노아가 인류의 시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노아에게 축복을 주셨습니다.
창세기[Genesis 9:1~3] 하나님이 노아와 그 아들들에게 복을 주시며 그들에게 이르시되 생육하고 번성하여 땅에 충만하라 땅의 모든 짐승과 공중의 모든 새와 땅에 기는 모든것과 바다의 모든 고기가 너희를 두려워하며 너희를 무서워하리니 이들은 너희 손에 붙이었음이라 무릇 산동물은 너희의 식물이 될지라 채소같이 내가 이것을 다 너희에게 주노라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 이 세상에서 번성되고 노아의 세 아들을 통해서 이 세상이 편만하게 되었다는 사실을 알아보겠습니다.
창세기 [Genesis10:32] 이들은 노아 자손의 족속들이요 그 세계와 나라대로라 홍수 후에 이들에게서 땅의 열국 백성이 나뉘었더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세계라는 뜻은 온 세계가 아니고 노아의 족속계통이라는 뜻입니다.
열국 백성이 노아 식구들을 통해서 나뉘어 졌다고 말씀했습니다.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 장막안에 누웠을 때
셈과 야벳이 아비 하체를 덮어 주기 위해
들어가는 장면표현
소 제목 2. 완전한 자 노아와 하나님과의 동행
노아는 어떤 사람인가? 완전한 사람인가? 불완전한 사람인가? 창세기[Genesis 6:9~!0] 노아의 사적은 이러하니라 노아는 의인이요 당세에 완전한 자라 그가 하나님과 동행하였으며 그가 세 아들을 낳았으니 셈과 함과 야벳이라 하나님과 동행하는 것은 제쳐놓고라도 세상에서 좀 유명한 사람하고 둘이서 좀 같이 갔다 왔다면 그것이 얼마나 화젯거리로 오르내리는지 말도 못 합니다.
대통령과 사진을 하나 찍었다면 그 20년 30년 어쩌면 죽도록 얘기하며 그 사진을 확대해서 걸어놓고 자랑거리로 내 세웁니다.
가장 작은 예로 당회장 목사님과 어디 좀 갔다 왔다면 그것을 얼마나 자랑으로 여기며 주위에 알리겠습니까?
그런데 하나님과 동행했다는 것은 말로 표현할 수 없을 정도로 대단한 것입니다. 노아가 있는 곳에는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완전한 자를 통해서 불완전한 것을 보여주시고 그 불완전한 역사를 통해서 축복과 저주가 나누어져서 이 세대가 이 세상 끝날에 어떤 결과를 가져올 것인가를 보여주셨습니다. 믿음의 백성들에게 생명의 통로를 알려 주시기 위함인 줄 믿습니다.
노아가 포도농사를 지은 것은 이 세상 심판이 끝나고 난 뒤에 수없이 많은 과일나무와 채소가 있지만 왜 포도나무 농사부터 시작했는가 하는 것은 이 세상 끝날의 모든 심판은 포도나무 농사의 성공 또는 실패 여부에 있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 [John15:1] 내가 참 포도나무요 내 아버지는 그 농부라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보니까 하나님께서 농부요 예수님께서 포도나무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상으로 볼 때에 이 지구상에서 제일 먼저 포도원의 농사를 시작한 사람이 노아라고 생각합니다. 노아가 포도주를 마시고 취하여 그 장막 안에 벌거벗었다고 했습니다.
처음으로 포도농사를 지어 포도알맹이를 모아놓으니 그것이 술이 되는지 포도가 되는지 모를 수도 있습니다. 어쨌든 처음으로 포도주를 먹고 취한 것입니다. 취해서 벌거벗었습니다. 성경상으로는 벌거벗은 것이 좋은 것이 아닌 것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소 제목 3. 홍수 이후의 언약과 새 창조의 의미
하나님께서는 홍수로 세상을 심판하신 후 노아와 새 언약을 세우셨습니다. 다시는 홍수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하리라는 약속 안에는 단순한 자연재해의 방지가 아닌 더 깊은 하나님의 계획이 담겨 있습니다. 홍수로 심판하지 않는다는 것은 인간의 생명을 보존하겠다는 약속입니다. 무지개는 자연현상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입에 물을 품어 가지고 햇빛이 있는 쪽을 향해서 물을 확 뿜어 보세요. 무지개가 생기는 것을 직접 육안으로 바라볼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 무지개가 처음 생긴 것이 아니라 홍수 후에 처음 떠 있는 안갯속에 태양 빛이 비추이므로 빛의 꺾임으로 인하여 프리즘 같이 찬란하고 아름다운 무지개가 생겼을 때에 하나님께서 무지개를 가리키면서 약속을 하셨습니다.
무지개 색깔이 일곱 가지 색깔입니다. 하나님께서 일곱 번 약속하셨습니다. 다시는 홍수로서 이 세상을 심판하지 아니한다는 하나님과 인간사이의 언약이었습니다. 요한계시록 [Revelation16:15] 보라 내가 도적같이 오리니 누구든지 깨어 자기 옷을 지켜 벌거벗고 다니지 아니하여 자기의 부끄러움을 보이지 아니하는 자가 복이 있도다라고 말씀합니다.
예수님께서 오실 때에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는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노아는 벌거벗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또 당대에 완전한 자요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인 노아가 포도주에 취해서 벌거벗은 수치를 보였습니다. 하나님과 동행하지 않는 자가 몸을 벌거벗었다면 그것은 당연히 저주를 받아 마땅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과 동행하는 자가 자기의 벗은 몸을 보이고 술에 취해서 장막에서 잠을 잤다면 거기에는 하나님의 모략이 숨겨져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 모략이 어떤 것인지를 후편에서 자세히 살펴보겠습니다.
결론
노아의 사건은 단순한 과거의 홍수 역사가 아닙니다. 인자의 날이 노아 때와 같다고 하신 주님의 말씀은 오늘 이 세대를 향한 경고이며 동시에 축복의 초대입니다. 노아가 인류의 새 시조가 되어 축복을 받은 것처럼 우리도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새 창조의 축복 안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완전한 자의 삶이 어떠한 결과를 낳는지 그리고 축복과 저주가 어떻게 갈라지는지를 후편에서 더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오늘 말씀을 통해 눈이 열리고 하나님의 크신 경륜 안에서 크게 깨닫는 분들이 모두 되시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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