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역 한글-슥 11:4~14 전편 참조
전편에서 우리는 성전고의 의미와 잡아먹히는 양 떼, 그리고 참 목자와 거짓 목자의 차이를 살펴보았습니다. 후편에서는 하나님께서 은총의 막대기를 꺾으시는 장면과, 은 삼십 냥이 토기장이에게 던져지는 놀라운 예언의 성취, 그리고 연락의 막대기가 꺾임으로 끝나는 하나님의 최후 경고를 함께 묵상하겠습니다. 이 말씀은 수천 년 전에 기록되었지만, 오늘 우리의 신앙 현실에 그대로 살아 숨 쉬고 있으니 하나님의 생명의 말씀 능력에 놀라지 않을 수 없습니다.
소제목 1: 은 삼십 냥의 정체
"내가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가 좋게 여기거든 내 고가를 내게 주고 그렇지 아니하거든 말라 그들이 곧 은 삼십을 달아서 내 고가를 삼은지라" (슥 11:12).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고 진리를 깨달은 참 양들, 그 작은 무리들만이 구원을 받게 됩니다. 그리고 그 참 양들이 드린 고용의 대가가 바로 은 삼십 냥입니다. 그런데 이 은 삼십 냥은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받은 은 삼십 냥과 액수가 같습니다. 이것이 우연일까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가룟 유다가 받은 은 삼십 냥은 토기장이의 밭을 사는 데 쓰였습니다. 그런데 마태복음 27장 3절을 보면, 유다가 뉘우쳐 그 은 삼십을 대제사장들과 장로들에게 도로 갖다 주며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 하니 저희가 "그것이 우리에게 무슨 상관이 있느냐 네가 당하라" 하였습니다. 유다는 은을 성소에 던져 넣고 스스로 목매어 죽었고, 대제사장들은 그 돈이 피 값이라 성전고에 넣어 둠이 옳지 않다 하여 토기장이의 밭을 사서 나그네의 묘지를 삼았습니다. 놀랍게도 이것은 스가랴 선지자가 수백 년 전에 이미 예언한 그대로 성취된 것입니다. 가룟 유다가 바친 은 삼십 냥은 하나님의 성전고에 들어가지 못했습니다. 피 값으로 받은 것이기 때문입니다. 반면 참 양들이 드린 은 삼십 냥은 하나님의 성전고에 들어갔습니다. 같은 금액이지만 전혀 다른 결말입니다. 우리의 헌금과 충성이 어느 쪽에 해당하는지 깊이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소제목 2: 나그네의 밭과 토기장이
"그러나 여호와는 우리 아버지시이다 우리는 진흙이요 주는 토기장이시니 우리는 다 주의 손으로 지으신 것이라" (사 64:8). 토기장이가 만들 수 있는 흙은 점토 흙이라야 합니다. 이 점토 흙은 마치 점과 같이 작은 흙인데 먼지와 같이 작은 흙을 가지고 토기장이가 그릇을 굽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흙으로 빚어 만드신 창조주이십니다. 그 점토 흙이 바로 토기장이 하나님이 가지고 계신 흙입니다.
그렇다면 나그네의 밭이란 무엇을 의미합니까? 오다가다 길에서 죽은 사람들, 집도 없고 고향도 없는 사람들을 묻는 묘지가 바로 나그네의 밭입니다. 기성교회 신앙은 나그네의 신앙이요 외국인의 신앙이었던 것입니다. 오늘날 많은 교인들이 스스로 나그네라고 고백합니다. "세월이 여류 하는데 이 나그네 된 나는"이라는 찬송을 부릅니다. 그러나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는 너희가 외인도 아니요 손도 아니요" (엡 2:19). 손이 무엇입니까? 나그네입니다. 외인은 외국인입니다. 이제부터는 나그네도 아니요 외인도 아니요 오직 성도들과 동일한 시민이요 하나님의 권속이라는 말씀입니다. 나그네 신앙생활을 하는 것은 성전고에 들어갈 수 없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권속이 된 자들의 헌금만이 하나님의 금고에 들어가는 것입니다. 토기장이 하나님의 손에 빚어진 자, 창조의 근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자만이 참된 하나님의 자녀이며, 그 자녀들에게만 성전고에 들어가는 품삯이 주어집니다.
소제목 3: 끊어진 연락의 막대기
"그 은 삼십을 여호와의 전에서 토기장이에게 던지고 내가 또 연락이라 하는 둘째 막대기를 잘랐으니 이는 유다와 이스라엘 형제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슥 11:14). 연락이란 막대기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형성된 언약을 말합니다. 그 언약이 파괴되면 하나님의 성전고에 넣을 수 없는 것입니다. 세상에서 사업을 한다든지 혹은 좋은 약속이 형성되었을 때 그 약속이 파괴되면 그 약속에 있던 축복이 없어지는 것과 같습니다.
은총이란 막대기가 잘려지면 세상은 망치게 됩니다. 계약이 파괴되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은혜를 베풀면 백 번, 천 번, 만 번 잘못해도 계속 용서해 주는 것이 아니라 한계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은총이란 막대기를 이제는 살 사람은 살 데로 가고 죽을 사람은 죽을 데로 가고 죽을 놈을 잡아서 연락이란 막대기에 붙여서 다시 붙일 필요 없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은총이란 막대기가 잘라졌으니 이는 모든 백성과 세운 언약을 폐하려 함이었다는 말씀입니다. 기도해도 통하지 않는 것입니다. 불통입니다. "이는 유다가 이스라엘의 의를 끊으려 함이었느니라" 그러므로 이스라엘은 이스라엘이요 유다는 유다입니다. 하나님에게서 유다에게는 축복을 주시고 이스라엘에게는 의를 끊은 줄 믿습니다. 연락의 막대기가 잘린 자들에게는 더 이상 하나님과 연락될 일이 없습니다. 이 얼마나 두렵고 떨리는 말씀입니까. 오늘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은 은총이란 막대기와 연락이란 막대기가 항상 함께하는 하나님의 축복이 충만하시기를 간절히 소망합니다.
결론
스가랴 11장 후편 말씀을 통해 우리는 은 삼십 냥의 놀라운 예언적 성취와 토기장이 하나님의 손에 빚어진 참 백성의 의미, 그리고 연락의 막대기가 끊어질 때 찾아오는 심판의 경고를 깊이 묵상했습니다. 하나님의 성전고에 들어가는 품삯을 받기 위해서는 참 목자 아래에서 진리의 말씀을 따라 살아야 합니다. 나그네 신앙이 아닌 하나님의 권속으로서, 은총과 연락의 막대기가 항상 나와 함께하는 복된 신앙생활 되시기를 예수 이름으로 간절히 기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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