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b제목: 전편[사41장] 섬들아 잠잠하라, 기록된 대로 가는 인생,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신 하나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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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은 순 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b제목: 전편[사41장] 섬들아 잠잠하라, 기록된 대로 가는 인생,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신 하나님

by 영원한 샘물 2026. 5. 2.

개역한글-이사야 41:1~7

 

1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 민족들아 힘을 새롭게 하라 가까이 나아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우리가 가까이 하여 서로 재판하자 2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하게 하되 그들의 칼에 티끌 같게, 그들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3절 그가 그들을 쫓아서 그 발로 가 보지 못한 길을 안연히 지났나니

 

4 이 일을 누가 행하였느냐 누가 이루었느냐 누가 태초부터 만대를 명정하였느냐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5절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 와서6 각기 이웃을 도우며 그 형제에게 이르기를 너는 담대하라 하고 7 목공은 금색공을 장려하며 마치로 고르게 하는 자는 메질꾼을 장려하며 가로되 땜질이 잘 된다 하며 못을 단단히 박아 우상으로 흔들리지 않게 하는도다

소제목 1. 섬들아 잠잠하라 

이사야 41장은 조용히 펼쳐지는 말씀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법정의 재판장 자리에 앉으시고, 온 세상의 섬들과 민족들을 불러 세우시는 장면으로 시작됩니다. "섬들아 내 앞에 잠잠하라"는 단순한 침묵의 명령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법정 앞에 서 있는 피조물의 자세를 요구하시는 말씀입니다. 여기서 '섬'이란 물리적 거리를 가리키는 것이 아닙니다. 섬은 어미 뱃속에서 나온 존재, 곧 스스로 독립되어 있다고 여기는 자들, 하나님과 거리를 두고 살아가는 원방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사 49:1 참조). 요한복음 1장 1절이 "태초에 말씀이 있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라고 선언하듯, 하나님은 말씀으로 천지를 창조하셨고, 그 말씀이 지금도 섬들을 향해 외치고 있습니다. 잠잠하라는 말씀은 무엇을 뜻합니까? 합바국 2장 20절은 이렇게 말합니다. 

 

"오직 여호와는 그 성전에 계시니 온 천하는 그 앞에서 잠잠할지니라." 하나님의 성전 앞에 나왔을 때, 인간의 말과 주장과 철학은 멈추어야 합니다. 입을 닫고, 하나님의 말씀을 받아야 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이 말씀 앞에 서는 우리 모두도 먼저 잠잠해야 합니다. 내 생각, 내 판단, 내 경험보다 먼저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힘을 새롭게 하라"는 말씀도 새 힘을 얻으라는 뜻입니다. 멀리서 큰 소리를 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 가까이 나아와 말씀을 받을 때 새 힘이 주어집니다. 수요예배에 참석하는 사람이 일요예배만 참석하는 사람보다 항상 영적으로 가깝고, 마음이 가까운 자는 몸도 가까워지게 마련입니다. 가까이 나오라, 그리하고 말하라, 서로 변론하자 —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원하시는 신앙의 자세입니다.

소제목 2. 기록된 대로 가는 인생

"인자는 자기에게 대하여 기록된 대로 가거니와 인자를 파는 그 사람에게는 화가 있으리로다 그 사람은 차라리 나지 아니하였더면 제게 좋을 뻔하였느니라" (마 26:24)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시면서 "나는 기록된 대로 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것은 성경 전체를 꿰뚫는 놀라운 선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단순한 역사 기록이 아닙니다. 그것은 앞으로 일어날 일들을 이미 기록해 놓으신 하나님의 작전계획서입니다. 세상에서도 농부가 씨앗을 뿌릴 때, 이미 그 씨앗이 어떤 열매를 맺을지 결정되어 있습니다. 처음부터 "이 나무는 잘 자랄 것이다, 못 자랄 것이다" 하는 것을 농부는 압니다. 나무를 많이 키워본 농부라면 첫눈에 "이 과목의  좋은 열매 결실 여부를 이미 아십니다. 그래서 기록된 성경 자체는 인간의 어떤 교훈이나 바르게 살라는 입장에서 기록된 것이 아닙니다. 

 

만약 그랬다면 교훈으로서 바르게 살고 의롭게 살라고 기록되었다면 꼭 성경이 아니어도 될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의 신으로 기록된 말씀입니다. 하나님 자신이 내가 어떻게 일을 행할 것이다 하는 것을 알려야 되는데, 알려진 것을 알려야 되는데, 우리가 바로 알 수 없기 때문에 슬쩍 돌려서 비유로 말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슬쩍 돌려서 비유로 말한 이유는 읽어도 모르게 하기 위하여 비유로 말한 것이지 알게 하기 위하여 비유로 말한 것이 아닙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어떻게 읽느냐, 마음의 깨달음으로 읽었느냐, 입으로만 읽었느냐에 따라서 구원을 받느냐 못 받느냐가 결정됩니다. 기록된 것을 모르는 사람은 어떻게 갈 것도 모르는 사람입니다. 오늘이 말씀은 기록된 것을 키우면 복을 받는다는 진리를 우리에게 선포합니다. 또한 책에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습니다.

 

 

소제목 3.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신 하나님 

"누가 동방에서 사람을 일으키며 의로 불러서 자기 발 앞에 이르게 하였느뇨 열국으로 그 앞에 굴복케 하며 그로 왕들을 치리 하게 하되 그들로 그의 칼에 티끌 같게, 그의 활에 불리는 초개 같게 하매" (사 41:2) 하나님은 역사 속에서 한 사람을 일으키십니다. 동방에서 사람을 불러 의로 세우시고, 그를 통해 열국을 굴복시키시는 하나님의 섭리가 이사야 41장에 생생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 말씀을 통해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역사는 결코 우연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누군가가 역사의 무대에 등장하는 것도, 사라지는 것도, 모두 하나님의 명정 하심 안에 있습니다. 왕들을 치리 하되 그들을 칼에 티끌 같게 만든다는 표현을 생각해 보십시오. 칼이 얼마나 빨리 움직이느냐를 상상해 보면, 칼로 쳐서 부스러기를 만들 정도라면 그 칼 솜씨는 놀라운 것입니다.

 

무 하나를 던져서 칼로 딱 자르면 두 동강이 나는데, 땅에 떨어지기 전에 동시에 타다닥 치니까 한 20쪽이 산발적으로 흩어져서 떨어진다면 참 대단한 칼 솜씨입니다. 그런데 종말의 사명자의 칼 솜씨는 어느 정도냐, 티끌 같게, 먼지 같게 처 버렸다 하여 가루를 만든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이 단순히 군사적 승리를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비유하는 것이기도 합니다. 하나님이 사명자를 불러 역사의 중심에 세우실 때, 그 사명자는 태초부터 하나님께서 이미 결정해 놓으신 자입니다. "나기 전부터 이미 하나님께 작정된 사명자"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렘 1:5 참조). 시대마다 하나님은 그 시대의 사명자를 부르셨습니다. 태초, 천지창조 할 때부터 그 시대의 주인공으로 불렀고, 만대 후에 될 것을 미리 명정 하셨습니다.

결론.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나 여호와라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사 41:4) 이 말씀이야말로 이사야 41장의 심장입니다. "태초에도 나요, 나중 있을 자에게도 내가 곧 그니라." 역사의 처음도 하나님이시고, 역사의 마지막도 하나님이십니다. 그 중간에 있는 우리의 인생도 하나님의 손안에 있습니다. 예수님이 "나는 기록된 대로 간다"라고 하셨을 때, 이미 태초부터 기록된 그 길을 걸어가셨습니다. 다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기록된 대로 구원을 받는 사람은 기록된 대로 구원을 받고, 기록된 대로 심판을 받는 사람은 심판을 받습니다. 

 

어떻게 기록된 것을 읽고 깨닫느냐에 따라서 우리의 운명이 달라집니다. 섬들이 보고 두려워하며 땅 끝이 무서워 떨며 함께 모여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 하나님의 법정 앞에, 우리가 내놓을 수 있는 것은 오직 순종뿐입니다. 잠잠히 하나님 앞에 나아와 말씀을 듣고, 기록된 대로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주어진 복된 길입니다. 오늘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십시오. 태초부터 나를 아셨고, 나중 있을 자에게도 함께하실 그 하나님 — 그분이 오늘도 우리와 함께 계십니다. 그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붙잡고, 기록된 대로 살아가는 복된 삶이 되시기를 간절히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