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제목: 뽕나무 위로 올라간 세리장, 삭개오 를 알아 본 예수님, 변화된 삭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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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호와의 말씀은 순결함이여 흙 도가니에 일곱 번 단련한 은 같도다

제목: 뽕나무 위로 올라간 세리장, 삭개오 를 알아 본 예수님, 변화된 삭개오

by 영원한 샘물 2026. 3. 24.

 
[인생의 전환점] 
신앙생활을 하다 보면 누구나 한 번쯤 ‘내 삶에 진정한 변화가 가능할까?’라는 질문을 던지게 됩니다. 오늘 우리는 성경 속에서 가장 극적인 변화를 경험한 인물 중 한 명인 삭개오의 이야기를 통해 그 해답을 찾아보고자 합니다. 여리고의 세리장이자 부자였던 그가 왜 뽕나무 위로 올라가야만 했는지, 그리고 그곳에서 만난 예수님이 그의 인생을 어떻게 송두리째 바꾸어 놓았는지 깊이 묵상해 봅시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모든 본문은 2~3회 천천히 숙독하는 것이 은혜를 받는 비결 중에 비결입니다.  왜냐하면 말씀을 두 번째 세 번째 읽는 중에 안 보였던 말씀이 보일 수 있고 하나님의 세밀한 음성을 들을 수 있으니까요.

성경 본문 [개역한글] 누가복음 19:1~10

1 예수께서 여리고로 들어 지나가시더라 2 삭개오라 이름하는 자가 있으니 세리장이요 또한 부자라 3 저가 예수께서 어떠한 사람인가 하여 보고자 하되 키가 작고 사람이 많아 할 수 없어 4 앞으로 달려가 보기 위하여 뽕나무에 올라가니 이는 예수께서 그리로 지나가시게 됨이러라


5 예수께서 그곳에 이르사 우러러 보시고 이르시되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 하시니 6 급히 내려와 즐거워하며 영접하거늘 7 뭇사람이 보고 수군거려 가로되 저가 죄인의 집에 유하러 들어갔도다 하더라 8 삭개오가 서서 주께 여쭈오되 주여 보시옵소서 내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주겠사오며 만일 뉘 것을 토색한 일이 있으면 사배나 갚겠나이다

9 예수께서 이르시되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으니 이 사람도 아브라함의 자손임이로다10 인자의 온 것은 잃어버린 자를 찾아 구원하려 함이니라

[소제목 1]  뽕나무 위로 올라간 세리장

여리고의 세리장 삭개오는 세상적인 기준으로 보면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막강한 권력을 가졌고, 남부럽지 않은 부를 축적했습니다. 하지만 성경은 그를 '키가 작은 자'라고 묘사합니다. 이는 단순히 신체적인 조건만을 의미하는 것이 아닙니다. 동족들의 고혈을 짜내어 로마에 바치며 얻은 부는 그에게 육체적 풍요를 주었을지 모르나, 영혼의 공허함과 사람들의 멸시라는 마음의 짐을 안겨주었습니다.

그는 ‘예수가 어떠한 사람인가’ 궁금해했습니다. 단순히 호기심이 아니었습니다. 자신의 내면을 채울 수 없는 갈증이 그를 움직이게 한 것입니다. 하지만 수많은 인파에 가로막혀 예수님을 볼 수 없었습니다. 여기서 삭개오의 비범함이 나타납니다. 그는 자신의 체면과 사회적 지위를 모두 내려놓고 뽕나무 위로 올라갑니다.

세리장이라는 높은 위치의 사람이 나무에 매달려 있는 모습은 사람들의 비웃음거리가 되기에 충분했습니다. 그러나 삭개오에게는 타인의 시선보다 예수님을 만나고자 하는 영적인 갈망이 더 컸습니다. 진리는 이처럼 자신의 교만과 체면을 꺾고 낮은 곳으로, 혹은 주님을 바라볼 수 있는 ‘나만의 뽕나무’로 올라가는 자에게 허락됩니다.

 

                                          예수님을 만나기 위해 뽕나무 위에 올라간 키작은 삭개오

[소제목 2] 삭개오 를 알아 본 예수

 

예수님께서 나무 아래에 이르셨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예수님은 나무 위를 우러러보시며 그의 이름을 부르셨습니다. “삭개오야, 속히 내려오라.” 그 시기 여리고 사람들에게 삭개오는 이름 대신 ‘죄인’ 혹은 ‘매국노’라고 불리던 존재였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그의 이름을 정확히 알고 계셨고, 그의 영혼이 겪고 있던 고독을 읽어내셨습니다. 예수님의 이 부르심은 삭개오의 닫혔던 마음 빗장을 단번에 열어젖혔습니다.

더욱 파격적인 것은 “내가 오늘 네 집에 유하여야 하겠다”는 말씀이었습니다. 당시 유대 사회에서 죄인의 집에 들어가는 것은 함께 정죄받기를 자처하는 일이었습니다. 주위 사람들은 수군거렸습니다. 하지만 예수님은 세상의 비난보다 한 잃어버린 영혼의 회복을 더 소중히 여기셨습니다. 아무런 조건 없이 자신을 받아들여 주시고, 자신의 부끄러운 삶의 공간인 ‘집’으로 기꺼이 들어오시겠다는 주님의 사랑 앞에 삭개오의 완악했던 마음은 눈 녹듯 녹아내렸습니다.

[소제목 3]  변화된 삭개오

예수님을 만난 삭개오의 반응은 즉각적이고도 구체적이었습니다. 그는 서서 주님께 고백합니다. 소유의 절반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누어 주고, 누군가에게 부당하게 빼앗은 것이 있다면 네 배나 갚겠다는 파격적인 선언이었습니다. 이는 당시 율법이 정한 배상 기준보다 훨씬 엄격한 것이었습니다.

삭개오에게 돈은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습니다. 그런 그가 재물을 포기했다는 것은 그의 가치관이 완전히 바뀌었음을 의미합니다. 이제 그에게는 돈이 주는 안전감보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이 더 커졌던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선언을 들으시고 “오늘 구원이 이 집에 이르렀다”고 선포하셨습니다. 구원은 관념적인 고백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이처럼 삶의 우선순위가 바뀌고 이웃을 향한 사랑으로 실천될 때 비로소 완성됩니다. 삭개오는 더 이상 잃어버린 자가 아니라, 당당한 아브라함의 자손으로 회복되었습니다.

맺음말

오늘날 우리도 각자의 ‘여리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세상의 성공을 쫓아 달려가지만, 정작 영혼의 키는 자라지 않아 공허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삭개오의 믿음을 통해 우리에게 묻습니다. 당신은 주님을 뵙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하고 있습니까? 혹시 세상의 시선이 두려워 뽕나무 위로 올라가기를 주저하고 있지는 않나요?

진리의 성령님께서는 오늘도 우리의 이름을 부르고 계십니다. 우리가 겪고 있는 내면의 갈등과 상처를 이미 알고 계시며, 우리의 남루한 일상 속으로 들어오기를 원하십니다. 삭개오가 뽕나무에서 내려와 주님을 영접했을 때 그의 온 집안에 구원이 임했던 것처럼, 우리 또한 마음의 문을 열고 주님을 모셔 들여야 합니다.

세상의 가치에 함몰되지 않고, 주님의 음성에 감사하여 삶의 변화를 이끌어내는 용기가 우리 모두에게 있기를 소망합니다. 잃어버린 자를 찾아오신 예수님의 그 극진한 사랑이, 이 글을 읽는 모든 분의 심령 위에 임하시기를 바라며 영혼의 갈급함 을 촉촉하게 적셔주는 영생의 말씀이 세계적으로 전파되기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